자동차를 잘 모르는 사람도 “말 그려진 로고” 하면 두 브랜드를 떠올립니다. 페라리와 포르쉐죠.
둘 다 앞발을 번쩍 든 검은 말입니다. 배경도 노란색으로 비슷하고요.
그래서 “둘 중 하나가 베낀 거 아니냐”는 얘기가 지금도 돌아다닙니다. 실제로 페라리 말이 차에 붙은 게 1932년, 포르쉐는 1952년. 딱 20년 차이가 나거든요.
그런데 이 두 말은 출발점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알고 나면 오히려 닮은 게 우연이라는 쪽이 더 납득됩니다.
페라리의 말은 전투기 조종사의 부적에서 시작됐습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공군의 에이스 조종사 프란체스코 바라카. 그가 자기 기체 동체에 그려 넣은 말 문양이 페라리 로고의 뿌리입니다.
왜 하필 말이었냐면, 바라카가 조종사가 되기 전에 기병대 소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출신을 기념한 표식이었던 거죠.
1923년, 레이서로 뛰던 엔초 페라리가 라벤나 인근 서킷에서 우승합니다. 그 자리에서 바라카의 어머니인 파올리나 백작 부인을 만나는데요. “아들이 달고 다녔던 이 말을 당신 차에 붙이면 행운이 따를 것”이라는 제안을 받습니다.
엔초는 이걸 받아들였습니다. 원래 붉은색이던 말을 검정으로 바꾸고, 배경은 자기 고향 모데나의 상징색인 노란색으로 채웠죠.
1929년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창단하고, 1932년부터 경주차에 이 문장이 붙기 시작합니다. 지금 페라리 펜더에 붙은 방패 속 SF가 바로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약자입니다.

포르쉐 로고의 말은 개인 사연이 아니라 도시 문장에서 왔습니다
포르쉐는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개인의 스토리가 아니라 지역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왔거든요.
포르쉐 본사가 있는 도시가 슈투트가르트입니다. 이 도시의 문장이 노란 바탕에 앞발을 든 검은 말이에요. 포르쉐는 그걸 방패 정중앙에 그대로 심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도시 이름 자체입니다. 슈투트가르트의 어원은 고대 독일어 스투텐가르텐인데요. 스투텐은 말의 번식, 가르텐은 정원. 도시 이름이 아예 말 사육장이라는 뜻입니다.
방패 바깥쪽 검정과 빨강 줄무늬, 사슴뿔 문양은 뷔르템베르크-호엔촐레른주의 전통 문장에서 가져왔습니다. 맨 위에는 PORSCHE 레터링이 지붕처럼 얹혀 있고요.
말 한 마리 넣은 게 아니라, 브랜드가 서 있는 땅 전체를 방패 하나에 압축해 넣은 셈입니다.

공모전은 실패했고, 로고는 메모 한 줄에서 되살아났습니다
이 로고, 순탄하게 나온 게 아닙니다.
1951년 3월 포르쉐는 독일 예술 아카데미에서 공모전을 엽니다. 초기 356 고객이자 의사였던 오토마르 돔닉이 주도했고, 상금은 1,000마르크였죠. 결과는 전멸이었습니다. 경영진 마음에 드는 안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해 12월 말, 페리 포르쉐가 뉴욕에서 미국 수입업자 맥스 호프만과 저녁을 먹습니다. 이 대화 직후인 12월 27일자 페리의 메모에 이런 문장이 남아 있습니다. 스티어링 휠 허브에 포르쉐 레터링과 슈투트가르트 문장을 넣을 것.
식당 냅킨에 즉석에서 그렸다는 일화가 유명한데요. 실제 도면을 완성한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폭스바겐의 VW 로고를 만든 디자이너 프란츠 자베르 라임스피스였죠.
그렇게 1952년 356 스티어링 휠 허브에 처음 달렸고, 1954년 보닛으로, 1959년 휠 캡으로 번져 나갑니다.
20년 시차 때문에 생긴 모방설, 근거는 없습니다
여기서 그 오래된 논쟁이 나옵니다. 페라리가 20년 빨랐으니 포르쉐가 참고한 것 아니냐는 거죠.
결론부터 말하면 근거가 없습니다. 뒷발로 선 말은 유럽 문장 전통에서 수백 년간 흔하게 쓰이던 도안이에요. 포르쉐는 남의 브랜드가 아니라 자기 도시의 국장을 가져다 쓴 것뿐입니다.
반대 방향 오해도 있습니다. 바라카가 격추한 독일기에 그려진 슈투트가르트 문장을 자기 기체에 옮겨 그렸다는 얘기인데요. 이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기병대 출신을 기념한 표식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우연이라기엔 얄궂은 대목이 하나 있긴 합니다. 스쿠데리아라는 단어 자체가 이탈리아어로 마구간을 뜻하거든요. 말 농장이라는 뜻의 도시와, 마구간이라는 뜻의 팀 이름. 이쯤 되면 우연도 재주입니다.
같은 말이지만 국내에서 팔리는 규모는 30배 차이입니다
상징은 닮았어도 시장에서의 위치는 전혀 다릅니다.
2025년 국내 수입차 등록 기준으로 포르쉐는 1만 746대가 팔렸습니다. 전년 대비 30% 가까이 늘어난 수치죠. 같은 해 페라리는 354대였습니다. 대략 30배 차이입니다.
포르쉐 판매를 끌고 간 건 카이엔 3,768대, 파나메라 2,093대, 타이칸 2,039대, 마칸 1,587대. 억대 가격표를 달고도 SUV와 세단이 주력이라는 뜻입니다.
같은 해 포르쉐의 글로벌 판매는 27만 9,449대로 10% 줄었는데, 한국만 홀로 30% 늘었습니다. 이 방패를 유독 좋아하는 시장인 셈이죠.
결국 페라리의 말은 소수만 닿는 상징으로 남았고, 포르쉐의 말은 현실에서 굴러다니는 상징이 됐습니다.
포르쉐 로고는 71년 동안 여섯 번 다듬어졌습니다
1952년 첫 등장 이후 1954년, 1963년, 1994년, 2008년, 그리고 2023년까지. 포르쉐는 여섯 번 로고를 손봤습니다.
2023년 변경은 15년 만이었는데요. 브랜드 스타일링 팀이 3년을 붙들고 작업한 결과물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방패 가운데 STUTTGART 글자입니다. 이전에는 배경과 같은 색으로 음각 처리해 잘 안 보였는데, 검정 글자로 또렷하게 새겼죠.
전동화로 브랜드 색깔이 흐려질 수 있는 시점에, 오히려 뿌리인 도시 이름을 더 선명하게 꺼내 든 겁니다. 이 선택이 우연은 아니었을 겁니다.
두 브랜드 로고를 더 파고들고 싶다면 스쿠데리아 페라리 창단 배경, 페라리 사각형 로고와 방패 로고의 사용 구분, 포르쉐 356의 역사, 그리고 슈투트가르트 주펜하우젠 공장 이야기까지 이어서 찾아볼 만합니다. 람보르기니 황소나 마세라티 삼지창처럼 지역 상징에서 출발한 엠블럼들을 같이 보면 흐름이 더 잘 잡히고요.
같은 말처럼 보이지만, 하나는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조종사의 부적이었고 다른 하나는 말을 키우던 도시의 이름표였습니다. 로고는 결국 그 브랜드가 어디서 왔는지를 숨기지 못합니다.